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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세상이야기

최진실 아들 최환희’ 말고 가수 지플랫 최환희 '오늘은 래퍼 지플랫' (상세)

by 아자리77 2021. 1. 11.

‘최진실 아들 최환희’ 말고 가수 지플랫 최환희 '오늘은 래퍼 지플랫'

가수 지플랫(본명 최환희)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에서 열린 KBS ‘불후의 명곡’ 녹화에 참석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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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희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아, 동생 준희 루푸스병 완치”(밥심) 

故 최진실의 아들 최환희가 근황을 전했다. 

1월 11일 방송된 SBS플러스 ‘밥은 먹고 다니냐-강호동의 밥심’은 베스트 특집으로 꾸며졌다. 

이날 래퍼 지플랫으로 변신한 최환희가 출연했다. 올해 스무살이 됐다는 최환희는 “성인이 되니까 너무 좋다. 고등학교 때 못 해본 걸 다 할 수 있다”며 “PC방에 10시 넘어서까지 있을 수 있고, 술도 마실 수 있다. 술을 조금 할 줄 안다”고 밝혔다. 
강호동이 “술 마시고 들어오면 할머니가 걱정하시지 않을까”라고 묻자 최환희는 “지금까지 한번도 말썽을 피운 적이 없다. 이제는 할머니를 제가 모셔야죠”라고 의젓하게 말했다. 그는 현재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며 “동생(준희)은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 루프스 병이 다 완치돼서 잘 살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 있으면 누군가 떠오르는 눈매다. 웃을 때 살짝 휘는 눈이 엄마를 꼭 닮았다. 2008년 세상을 떠난 배우 최진실의 아들 환희. 그동안 비친 그는 타의에 의해서였다. ‘엄마의 납골당을 찾은 아들’, ‘국제학교에 입학한 고 최진실의 아들’ 등등. 그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얘기했다.
 
“어릴 때는 최진실 아들이란 수식어가 되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 좋아하는 것을 찾고 직업을 갖게 되면서, 독립된 아티스트로서 대중 앞에 섰을 때 그것이 나를 가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머니가 정말 자랑스럽지만 이제 그 그늘을 벗어나 스스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다.”
 
‘지플랫’이란 예명을 달고 막 데뷔한 스무 살 가수의 포부였다. 어쩌면 대중을 향한 당부 같았다. 특별할 것 없는 청년으로 봐달라는.
 
이번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소속사 측에 따르면 가수 지플랫은 데뷔와 동시에 쏟아진 관심을 모두 감당하지 못했다. 신인 가수로 주목받는 것 외에 가정사에 따른 시선의 무게감이 크다고 했다.

예명의 뜻과 만들어진 배경이 궁금하다. Z.flat(지플랫)의 ‘Z’는 영어 알파벳이고 ‘플랫’은 음악에서 반음 내릴 때 쓰는 표현이다. 음악에서 코드를 표기할 땐 알파벳은 A부터 G까지만 사용한다. 그러니까 지플랫은 존재하지 않는 음악 코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음악을 하겠단 뜻이다. 소속사 대표님이 붙여줬다.
 
국제학교에 입학할 만큼 공부를 꽤 잘한다고 들었는데 가수로 데뷔한다고 해 놀랐다. 열심히 준비해서 들어간 것은 맞지만 이후로 학업보단 예체능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학교에서 연극,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반강제적으로 배웠는데 친구들이 귀찮아할 때 나는 즐겼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음악과 조금씩 친해졌다. 원래 연기자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연기를 배워보니 잘 맞지 않는단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고등학교 힙합 동아리 회장이 학교 축제 무대에 함께 서보자고 권했다. 힙합을 좋아하기도 하고 재밌을 것 같았다. 무대에 섰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 느껴졌다. 음악에 대해 진지해지더라. 그 뒤로 용돈을 모아 장비를 사고 홈 리코딩을 하면서 래퍼의 꿈을 키워 나갔다. 지인 소개로 현재 대표님을 만나 쭉 교류를 해오다 마침 시기가 겹쳐 대표님이 설립한 회사의 첫 아티스트가 됐다.
 
데뷔곡 ‘디자이너’와 지플랫의 음악이 궁금하다. ‘디자이너’ 원곡은 1년 전에 내가 만들었다. 당시 대표님이 듣고서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데뷔 준비 때 그걸 기억해내시곤 그 곡을 데뷔곡으로 하자고 제안하셨다. 내가 만든 곡으로 데뷔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원곡은 서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의 남녀 사랑 얘기였다. 데뷔곡으로는 원곡보다 밝은 분위기가 나을 것 같아서 편곡했다. 또 사랑 얘기보단 ‘이 세상을 디자인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 실력은 밝은 곡보다 감성 짙은 곡에서 더 발휘되는 것 같다. 앞으로 낼 곡들은 조금 더 진지한 분위기가 될 것 같다.
 
데뷔곡을 발표한 지 한 달 정도 됐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많은 지인들이 응원하고 노래가 좋다고들 말한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100%를 보여주지 못했단 생각이 들어 걱정이 앞섰는데,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셔서 의외였다. ‘디자이너’보다 좋은 곡들이 많이 있다. 빨리 다음 곡으로 찾아뵙고 싶다.
 
가수로서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음악을 프로듀싱 할 수 있으면서 랩까지 한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스타일의 음악과 맞는지 제일 잘 알고 있고,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원하는 대로 프로듀싱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귀에는 정말 좋게 들린다.
 
음악적인 영감은 어떻게 얻는지. 평소 느끼는 감정이나 하고 싶은 말에서 주로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있는 그대로 음악에 담으면 뻔하고 재미없을 때가 많다. 최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나 은유법을 사용하려 한다.

#누군가 ‘불운’이라 했지만
 
 아들은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라고 했지만, 데뷔 소식이 더욱 화제를 모은 덴 엄마의 영향이 컸다. 가족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주어진 질문에 대해 소신껏 생각을 밝혔다.

현재로선 ‘가족 이야기’가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이 부분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 ‘사람들이 색안경을 낀 채 내 음악을 들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가장 많았다. 어머니가 워낙 대단하고 유명한 분이시기에 ‘최진실의 아들’이란 타이틀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 성장과정을 가졌단 이유로 앞으로 만들 음악에서 내 얘기를 솔직하게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도 컸다. 나는 평범한 스무 살 남자다. 친구들이랑 욕하며 놀 때도 있다. 전에 만들었던 음악 중엔 대중이 알고 있는 내 이미지와 다른 느낌의 가사들도 있다. 만약 나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방향의 음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사람들의 평가가 어떻든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선택할 것이다. 대중들이 나를 힙합을 좋아하고 그래서 음악을 하는 평범한 남자아이로 봐주시면 좋겠다.
 
주목받으며 커왔기 때문에 주목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받아온 주목이라 이제는 딱히 부담되지 않는다. 관심 속에서 살아온 지난 20년은 연예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튜토리얼(tutorial)이지 않았을까. 이제 공인이고 데뷔를 한 아티스트이니 이전에 받아온 관심과는 크기부터 다른 시선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지치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하는 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악플러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악플을 마주했을 때 대처법이 있다면. 솔직히 데뷔 전까지는 내게 달린 악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데뷔하고 나서야 알았다. 악플은 그 사람이 잘못을 했든 안 했든 ‘유명세’에 붙는 세금 같은 존재라는 것을.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내가 잘났든 못났든 (악플은) 따라오는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땐 마음이 아프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용은 다 내가 예측한 범위 안에 있었다. ‘어머니의 빽이냐’, ‘왜 굳이 연예인을 하느냐’는 반응들이 주였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일일이 확인하다 보니 악플까지 읽게 된다. 언젠가 굳은살이 생기지 않을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편이다.
 
환희, 준희 남매를 보호해주고 싶은 시선도 존재한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과거를 가진 게 사실이다.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불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가정사를 뒤로하고 정말 평범한 또래 아이들처럼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었다. 내 과거가 조금 특별하고 다를 순 있어도 현재는 그런 과거가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행복하고 밝게 살고 있다. 우리를 걱정해주고 보호해주시려는 시선은 나쁜 것이 아니니 부정하지 않는다.
 
준희 양도 오빠를 따라 연예인을 꿈꾸나. 준희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라 얘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요새는 미술 쪽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연예인의 길은 아닐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한다.
 
이영자, 홍진경 등 어머니의 절친이자 연예계 선배들이 해준 조언이 있다면? 많은 조언을 해주셨는데 제일 걱정하신 게 악플이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든 하고 싶은 것을 지켜가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주셨다.

#스물 최환희는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덜 행복할 거라고, 혹은 누군가 말했다는 것처럼 불운할 것이란 판단은 틀렸다.

지플랫 아닌 최환희가 궁금해졌다. 또래 남자애들과 다를 것 없이 게임을 좋아하고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코로나 전에는 해가 떠 있을 때 PC방에 들어가서 다음 날 해가 뜰 때 나온 적도 많다. 친구들 사이에선 ‘또라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당한 텐션의 소유자다. 사람들은 내 이런 모습이 낯설 수 있겠지만 차츰차츰 적응시켜 드리려 한다.
최환희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할 때다. 쉽게 말해 친구들이랑 있을 때 행복하다. 음악을 할 때도 행복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친구들과 있을 때 더 안정된다.
 
“곡을 더 내고 CD를 만들어서 어머니에게 갖다 드릴 생각”이라는 다른 인터뷰 답변을 읽었다. 엄마가 곁에 계셨다면 가수가 된 아들에게 어떤 얘기를 했을까. 최근 들어 어머니의 영상을 많이 봤다. 예전에 어머니가 예능에 출연해 하신 말씀들을 봤는데, 아마 내게 대견하다며 박수쳐 주셨을 것 같다. 어머니랑 술자리도 많이 가졌을 것 같다.
 
하늘 위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씩씩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늘에서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자 조카가 될게요. 많이 사랑합니다.
 
지플랫의 활동 계획과 목표는. 거창한 목표는 아직 없다. 음원사이트에 차트인 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과 같이 작업하는 것, 팬들과 공연장에서 뛰놀며 오래오래 음악을 하는 것이 목표다. 공식 음원을 내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발매하고 싶은 곡들이 쌓여 있다. 2021년 안에 첫 정규 앨범을 내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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